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질타를 받았다. 실체도, 성과도 없다는 것이다. 창조경제 한다고 부처 간 협력 양해각서(MOU) 맺기에 바쁜 미래창조과학부를 ‘뭐유(MOU)부’라고 꼬집은 의원도 있다.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각 부처와 경제단체의 의견을 모아 3대 목표, 6대 전략, 24개 추진과제를 담은 창조경제 청사진을 마련했다. 이에 맞춰 각종 창업지원 펀드를 만들었고, 소프트웨어 혁신 전략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정부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창조경제타운’(www.creativekorea.or.kr)에 많은 공을 들인다. 국민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모아 전문가가 코치하고 기업도 사업화를 돕는다는 개념이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 올라온 아이디어들을 직접 보고받겠다고 했다. 사이트 개설 한 달여 전에는 10대 그룹 회장단을 만나 “아이디어가 경쟁력 있는 신기술이 되고, 신사업이 돼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9월 30일 문을 연 창조경제타운은 순항하는 듯했다. 사흘 만에 703건, 하루 평균 234건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고무된 미래부는 3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의 머릿속에 잠재돼 있던 열망이 분출됐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아이디어 등록 건수는 바로 그 주 주말부터 하루 평균 60건이 채 안 될 정도로 급감했다. 국민들의 열망이 갑자기 식은 걸까?
미래부는 사이트 첫머리에 ‘다 함께 만들어가는 창조경제타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핵심 서비스인 ‘창조 아이디어 제안’ 방은 제안자와 전문가 멘토, 관련 공무원에게만 개방돼 있다. 창문도 꼭 닫아 다른 사람은 들여다볼 수도 없다. 장차 큰돈이 될 수도 있는 지식재산권을 누군가가 훔쳐가는 걸 막겠다는 이유다. 아이디어 보호는 중요하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더 큰 손실이다.
중소기업청이 7월 선보인 ‘아이디어 오디션’(ideaaudition.com)은 국민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장(場)이라는 점에서 창조경제타운과 같지만 운영 방식은 딴판이다. 수많은 누리꾼들이 초기 아이디어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부가가치를 높인다. 이런 집단지성의 결과물은 전문가 그룹의 심사를 통과하면 ‘함께 만들기’ 단계를 거쳐 실제 제품으로 판매된다. 아이디어 제안자와 기여도 높은 누리꾼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수익의 일부를 배분받는다. 아이디어 오디션은 제품 개발 및 투자 상황, 누적 수익금 랭킹을 실시간 업데이트해 누리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이디어 오디션이 롤 모델로 삼은 미국의 ‘쿼키’(www.quirky.com)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제품 이름, 가격까지도 누리꾼이 결정한다. 쿼키는 회의실 천장에 카메라를 매달아 회의 내용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며 누리꾼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쿼키의 기발한 제품들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다.
누리꾼들의 협업이 생명인 아이디어 오디션이나 쿼키는 원칙적으로 제안자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지 않는다. 제안자도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툭 던질 뿐이다. 누리꾼들은 옆 동네 놀러가듯 사이트에 들러 여기저기 구경하다 내키면 훈수를 하고 ‘좋아요’도 누른다. 창조경제마을(타운)에 갔다 문패(아이디어 제목) 밖에 못 보고 빠져나오는 누리꾼과는 충성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는 말은 창조경제에도 통한다.